■1
보행제가 끝나버리면 이제 이 코스를 달리는 일도 없겠구나.
도오루는 왠지 마음이 이상해졌다.
당연한 것처럼 했던 것들이 어느 날을 경계로 당연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해서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행위와 두 번 다시 발을 딛지 않을 장소가, 어느 틈에 자신의 뒤에 쌓여가는 것이다. 졸업이 가깝구나, 하는 것을 그는 이 순간 처음으로 실감했다.
■2
일상생활은 의외로 세세한 스케줄로 구분되어 있어 잡념이 끼어들지 않도록 되어 있다. 벨이 울리고 이동한다. 버스를 타고 내린다. 이를 닦는다. 식사를 한다. 어느 것이나 익숙해져 버리면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반사적으로 할 수 있다.
오히려 장시간 연속하여 사고를 계속할 기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에 의문을 느끼게 되며, 일단 의문을 느끼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촘촘히 구분하여 다양한 의식(儀式)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은 언제나 자주 바뀌어가며 쓸데없는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사진 출처 :: http://fotologue.jp/squaremagic#/1253934/4218786
■3
"봐, 저기. 수평선."
"우와, 뭐야, 저거."
"태양이지?"
"저곳만 밝아."
두 사람도 소리를 지른다.
그곳에는 신기한 광경이 있었다.
해는 옛날에 저물었다. 그러나 수평선은 밝았다.
하늘도 바다도 완전히 밤의 소굴인데 수평선만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다. 분명 바다 저편에 광원(光源)이 되는 뭔가가 있다.
세 사람은 홀린 듯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에 뭔가가 있다.
마치 수평선이 이 세상을 가로질러 금이라도 그어놓은 것 같았다. 창호지인지 무엇인지가 그곳만 얇아져서 건너편 세계의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위아래에서 밤이 공격하고 있었다. 조금 시선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 칠흙 같은 밤과 파도가 수평선을 향해 밀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저 수평선만이 낮의 마지막 아성인 것이다.
이런 풍경이 있다니.
■4
"그러니까 말이지, 타이밍이야."
시노부는 나직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가 빨리 훌륭한 어른이 되어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고 싶다, 홀로서기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건 잘 알아.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존경하기도 해.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네게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이 잡음이 들리느 건 지금 뿐이니까 나중에 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아. 너, 언젠가 분명히 그때 들어두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
■5
나는 포기하고 있다. 달아나고 있다. 타인에게 부정되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서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도 용서 따위 하지 않았으며 용서할 생각도 없다. 그야말로 지금 이곳을 걷고 있는 누구보다 오들오들 떨며 번들번들거리고 있는 것이다.
■6
보행제가 끝난다.
마라톤 수업도, 커플 머리띠도, 굳은살투성이의 다리도, 바다의 일몰도, 캔커피로 하는 건배도, 쑥떡도, 리카의 연기도, 치아키의 짝사랑도, 누군가의 사촌동생도, 헤어져버린 미와코도, 시노부의 오해도, 도오루의 시선도 그 모든 것이 다 과거의 일.
뭔가가 끝난다. 모두 끝난다.
머리 속에서 빙글빙글 여러 가지 장면들이 잔뜩 돌고 있지만, 혼란스러워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고 다카코는 중얼거린다.
뭔가의 끝은 언제나 뭔가의 시작이다.★ ★ ★ ★ ★ ★ ★
내내 추리소설만 읽다가 오래간만에 청춘소설(?)을 읽었다.
사실, 서대문도서관에 갔다가 종합자료실에서 떠들어대는 세하때문에 장르도 파악하지 못하고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이름만 보고 빌려온 책었는데 아, 이거 의외로 월척을 낚았더라.
학교 행사인 전교생 하루종일 걷기 행사. 일명 보행제.
그냥 걷는게 아니라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무려 꼬박 하루종일 걸어야하는 무모하지 않을까 싶은 행사.
그러나 친구들과 하루종일 함께 하는 행위만으로도 특별해지는 10대시절이라면, 그저 걷기만 하는 일이라도 그들에겐 충분히 특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 중간중간 반복되는 문장이 있다.
모두 함께 밤에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말이야.
어째서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특별한 걸까.꼭 10대시절이 아니더라도, 30대이건 40대이건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밤을 보내며 새벽까지 걷고 있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특별한 밤을 만들게 되겠지.
책을 읽으면서 '아아, 나도 조금만 젊었더라면 이런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데.' 하고 생각하게 만들더라. 그리고 그 생각 끝에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고 싶은 상대가 있지만 어쩐지 평소에는 불가능하다면 같이 밤새도록 걸으며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더라.
아주 특별한 책은 아니었지만 잔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괜시리 10대시설을 회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말이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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